무려 6년만에 완성된 프로젝트. 인류멸망보고서.
가끔 '2012'라는 숫자를 쓰다가 보면 내가 2012년에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략 20년 전쯤, 학교에서 공상과학 글짓기 대회나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할 때마다 2000년대, 거기에 10년을 더한 2010년은 코찔찔이 초딩에겐 얼마나 멀게 느껴졌던 미래였었나. 그림 실력이 졸라맨 수준이니 그림은 그렇다치고, 글짓기를 위해 가당치도 않았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나는 2010년 쯤엔 정말이지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좀 더 일찍 인간은 로봇을 만들어내고, 지배당하고, 결국은 로봇에 의해 멸망하게 될 거라는 초딩스럽지 않은 비관적 전망을 그려냈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노래를 불러대는 '서른 즈음에' 채 닿기도 전에 죽고 말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그러나 왠걸. 내 비관적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은 빠르면서도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고 그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나는 지금 '서른 즈음에'에 닿아있다. 조금씩 진화는 했지만, 진화의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지는 않았다. 아직 인간은 알약 하나로 밥을 해결하는 수준까지 된 건 아닌데다 해저도시까진 가지도 못했으니.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각종 예언가, 예언서들이 콕 집어 말했던 그 2012년을 사는 당신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정말 멸망이 가까워 왔다면 그 모습은 어떨 것 같은가.
여기 인류의 미래를 그린, 인류 멸망의 징후를 3가지 이야기로 구성한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가 있다. SF 영화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한국 영화판에서, 무려 6년 만에 완성된 프로젝트.
여기 인류의 미래를 그린, 인류 멸망의 징후를 3가지 이야기로 구성한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가 있다. SF 영화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한국 영화판에서, 무려 6년 만에 완성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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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진 신세계
석우(류승범)는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홀로 집에 남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게 된다. 소개팅 약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한 번에 처리하고 집을 나선다. 그가 버린 썩은 사과는 변이를 일으키고, 사과는 분리되지 않은 다른 음식물 쓰레기들과 함께 축산농가의 사료로 재생되어 소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 사료를 먹은 소의 고기를 사람들이 먹게 되고, 사람들은 하나씩 좀비로 변해간다. 매스컴에서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정치적 논쟁을 거듭하는 동안 알 수 없는 이 괴바이러스는 서울을 뒤덮게 되는데.
만화가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이라는 웹툰을 보면서 언제쯤 한국형 좀비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웹툰 만큼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실 조금 비관적으로 내다봤던 것도 사실이다. <인류멸망보고서>가 빛을 본 건 6년만, 이미 예전에 만들어졌던 단편 <멋진 신세계>를 보니 한국형 좀비물의 탄생을 기대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리얼했던 좀비 분장은 '오!' 하며 탄성을 내지르기엔 충분했다. 이 영화는 백미는 봉준호감독과 윤제문씨가 등장하는 TV 토론 장면이 아닐까 싶다. 광우병과 정치풍자를 엮어낸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영화 <괴물>에 임필성 감독을 속여 출연시킨 것에 대한 귀여운 복수로 봉준호 감독에게 스트레이트로 머리를 펴게 하고 개량 한복을 입혀서 출연시키게 했단다. 윤제문씨는 시인 김지하를 닮았다고 우기지만 감독님 보기에 주병진 닮은 것 같아서 영화에선 '주제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니 괜히 더 반갑다.
<멋진 신세계>는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사회풍자까지 얽히며 감독의 정치풍자 시선을 담아내었는데, 단편이다보니 조금은 산만하게 느껴진 점도 분명 있었다. 게다가 좀 더 시기적으로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개인적으로는 당분간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아졌기도 했고).
만화가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이라는 웹툰을 보면서 언제쯤 한국형 좀비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웹툰 만큼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실 조금 비관적으로 내다봤던 것도 사실이다. <인류멸망보고서>가 빛을 본 건 6년만, 이미 예전에 만들어졌던 단편 <멋진 신세계>를 보니 한국형 좀비물의 탄생을 기대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리얼했던 좀비 분장은 '오!' 하며 탄성을 내지르기엔 충분했다. 이 영화는 백미는 봉준호감독과 윤제문씨가 등장하는 TV 토론 장면이 아닐까 싶다. 광우병과 정치풍자를 엮어낸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영화 <괴물>에 임필성 감독을 속여 출연시킨 것에 대한 귀여운 복수로 봉준호 감독에게 스트레이트로 머리를 펴게 하고 개량 한복을 입혀서 출연시키게 했단다. 윤제문씨는 시인 김지하를 닮았다고 우기지만 감독님 보기에 주병진 닮은 것 같아서 영화에선 '주제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니 괜히 더 반갑다.
<멋진 신세계>는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사회풍자까지 얽히며 감독의 정치풍자 시선을 담아내었는데, 단편이다보니 조금은 산만하게 느껴진 점도 분명 있었다. 게다가 좀 더 시기적으로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개인적으로는 당분간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아졌기도 했고).
#2. 천상의 피조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미래, 천상사의 가이드 로봇 RU-4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제조사 UR은 로봇 해체를 결정하지만, 그를 인명스님으로 부르며 숭배하는 승려들은 반대한다. 해체 직전, 일촉즉발의 순간, UR의 엔지니어 박도원(김강우)이 상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명의 앞을 막아 서는데.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이기에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지켜봤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로봇에게 역으로 위협을 당하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설정, 로봇이 인간과 같은 아니 훨씬 더 뛰어난 지능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 로봇이 존재론적 고민에 빠진다는 설정은 사실 독특한 소재는 아니다. 여기에 종교적 색채를 덧붙이다 보니 훨씬 더 철학적으로 옮겨졌다. 로봇이 열반에 오른다는 설정과 비쥬얼에서 분명 돋보였던 <천상의 피조물>은 그 전달방법에서 살짝 아쉬움을 자아낸다. 로봇 스스로 가지는 존재론적 고민과 로봇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명령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주장이 쉴새 없이 쏟아내는 대사 토스로만 이어지다보니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풀어냈을 때, 훨씬 더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 목소리를 담당한 박해일, 김강우, 김민선 등의 배우들이 나온다기에 기대감이 높았지만, 임팩트 있는 한 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배우들이 너무 과잉된 감정연기를 하는 것이 내내 눈에 거슬렸지만, 결국 RU-4 혹은 인명스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의 열반 장면에선 이상하게 찌릿한 감정을 느낀 건 나뿐이었을까.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이기에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지켜봤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로봇에게 역으로 위협을 당하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설정, 로봇이 인간과 같은 아니 훨씬 더 뛰어난 지능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 로봇이 존재론적 고민에 빠진다는 설정은 사실 독특한 소재는 아니다. 여기에 종교적 색채를 덧붙이다 보니 훨씬 더 철학적으로 옮겨졌다. 로봇이 열반에 오른다는 설정과 비쥬얼에서 분명 돋보였던 <천상의 피조물>은 그 전달방법에서 살짝 아쉬움을 자아낸다. 로봇 스스로 가지는 존재론적 고민과 로봇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명령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인간의 주장이 쉴새 없이 쏟아내는 대사 토스로만 이어지다보니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풀어냈을 때, 훨씬 더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 목소리를 담당한 박해일, 김강우, 김민선 등의 배우들이 나온다기에 기대감이 높았지만, 임팩트 있는 한 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배우들이 너무 과잉된 감정연기를 하는 것이 내내 눈에 거슬렸지만, 결국 RU-4 혹은 인명스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의 열반 장면에선 이상하게 찌릿한 감정을 느낀 건 나뿐이었을까.
#3. 해피 버스데이
당구광 아빠의 8번 당구공을 실수로 망가뜨린 초등학생 민서(진지희)는 정체불명의 사이트에 접속해서 8번 당구공을 주문한다. 2년 뒤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오고,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민서 가족은 과학자지만 오타쿠에 가까운 삼촌(송새벽)이 설계한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다가, 뉴스를 통해 이 헤성이 8번 당구공 모양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류멸망보고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다시 임필성 감독의 작품이다. 앞서 두 작품이 6년 전에 촬영이 종료되었던 것에 반해 <해피 버스데이>는 최근작이다보니 좀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기술적으로 어떤 뚜렷한 진화를 겪었는지는 문외한인 내가 평가하기엔 좀 무리가 있고, 다만 <인류멸망보고서>에 속한 세 작품 중에선 가장 상상력이 돋보인 영화였다는 점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 방공호에 들어선 민서 가족들의 대화에서도 살짝 느껴졌지만 감독의 B급 유머에 대한 욕심은 인류의 멸망을 기다리며 상황을 중계하는 방송국 장면에서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옴니버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해피 버스데이>에서는 '그 날 이후'의 인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혜성충돌을 앞두고 상황을 중계하는 뉴스를 보며 사과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는 민서와 달리 홈쇼핑에선 멸망 마저 상품화하고, 뉴스 앵커는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쓸모 없던 삼촌이 만든 지하 방공호는 가족들을 구해냈고, 당구공을 주문해 혜성을 지구로 불러들인 소녀가 그 당구공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향한다. "멸망도, 부활도 모두 인류로부터!"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가.
<인류멸망보고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다시 임필성 감독의 작품이다. 앞서 두 작품이 6년 전에 촬영이 종료되었던 것에 반해 <해피 버스데이>는 최근작이다보니 좀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기술적으로 어떤 뚜렷한 진화를 겪었는지는 문외한인 내가 평가하기엔 좀 무리가 있고, 다만 <인류멸망보고서>에 속한 세 작품 중에선 가장 상상력이 돋보인 영화였다는 점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 방공호에 들어선 민서 가족들의 대화에서도 살짝 느껴졌지만 감독의 B급 유머에 대한 욕심은 인류의 멸망을 기다리며 상황을 중계하는 방송국 장면에서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옴니버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해피 버스데이>에서는 '그 날 이후'의 인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혜성충돌을 앞두고 상황을 중계하는 뉴스를 보며 사과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는 민서와 달리 홈쇼핑에선 멸망 마저 상품화하고, 뉴스 앵커는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쓸모 없던 삼촌이 만든 지하 방공호는 가족들을 구해냈고, 당구공을 주문해 혜성을 지구로 불러들인 소녀가 그 당구공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향한다. "멸망도, 부활도 모두 인류로부터!"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가.
드림 캐스팅! 눈에 띄는 특별출연!
그리고 하나 더. <인류멸망보고서>는 그야말로 드림캐스팅이다.
<멋진 신세계>는 류승범씨와 고준희씨가 인류멸망 바이러스의 최초 보균자와 최초 감염자로 출연한다. 눈에 띄는 특별출연으론 앞서 말했듯 토론프로그램에 나온 명사집단에는 봉준호 감독과 윤제문씨가 등장한다. 홍대 클럽 앞에서 친구를 배웅하던 청년 역에는 김무열씨가, 나이가 무색하게도 교복 차림의 고교생 좀비로 등장하는 마동석씨도 있다.
<천상의 피조물>에선 김강우, 김규리씨 이외에도 로봇과 꽤 잘 어울리는 박해일씨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성적인 로봇 제조업체 직원 김서형씨도 눈에 띈다. 빨간 헤어와 킬 힐로 패셔너블한 미래의 불량소녀 역으로 나오는 조윤희씨도 빼놓을 수 없다.
<해피 버스데이>에서는 어린 민서역에 진지희, 민서의 부모로 이승준씨와 윤세아씨, 오타쿠 삼촌 역엔 송새벽, 어른 민서역은 배두나씨가 맡았다. 멸망을 생중계하는 앵커로 류승수씨가, 앵커우먼 역에는 이영은씨가 출연해 '골 때리는' 상황을 연출한다. 앞서 <멋진 신세계>에도 출연했던 고준희씨가 여기서는 일기 예보를 전하는 푼수 기상 캐스터로 출연한다.
<멋진 신세계>는 류승범씨와 고준희씨가 인류멸망 바이러스의 최초 보균자와 최초 감염자로 출연한다. 눈에 띄는 특별출연으론 앞서 말했듯 토론프로그램에 나온 명사집단에는 봉준호 감독과 윤제문씨가 등장한다. 홍대 클럽 앞에서 친구를 배웅하던 청년 역에는 김무열씨가, 나이가 무색하게도 교복 차림의 고교생 좀비로 등장하는 마동석씨도 있다.
<천상의 피조물>에선 김강우, 김규리씨 이외에도 로봇과 꽤 잘 어울리는 박해일씨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성적인 로봇 제조업체 직원 김서형씨도 눈에 띈다. 빨간 헤어와 킬 힐로 패셔너블한 미래의 불량소녀 역으로 나오는 조윤희씨도 빼놓을 수 없다.
<해피 버스데이>에서는 어린 민서역에 진지희, 민서의 부모로 이승준씨와 윤세아씨, 오타쿠 삼촌 역엔 송새벽, 어른 민서역은 배두나씨가 맡았다. 멸망을 생중계하는 앵커로 류승수씨가, 앵커우먼 역에는 이영은씨가 출연해 '골 때리는' 상황을 연출한다. 앞서 <멋진 신세계>에도 출연했던 고준희씨가 여기서는 일기 예보를 전하는 푼수 기상 캐스터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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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호화캐스팅 영화네요. ㅎㅎ
옴니버스 영화라 하나의 큰 제목으로 모아놓고 보니까 엄청나지요?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영화<인류멸망보고서>'를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editor@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캐스팅이; 엄청나네요 ^^;
요 근래 영화를 보지 못해서... 내용이 어땠다~ 그런 이야기를 보면
극장에 좀 가야지 싶지만 아직은 너무 바쁘네요 ㅜㅜ
아쉽네요. 저도 한창 회사 다니느라 바쁠 때 딱 그 심정이었거든요. 특히 이 영화는 극장에 걸린지 얼마 안되서 내려간 게 좀 아쉬워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를 한 영화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대중성에서는 좀 약했던 것 같고요
이건 정말 오랜만에 꽤 수준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3.Happy Birthday가 마지막으로 내러티브를 정리하는 장치적인 부분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미흡하다고 생각이 된다. 첫번재와 두번째의 테마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은 우리 시대와 인간 세상의 문제점에 대한 신랄한 고발정신이랄까 하는 것에 공감이 간 까닭이다. 괴기적으로 그려져서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세상의 모습은 사실 이보다 더 광란적이고 폭력적이다. 이미 제동장치를 상실한 지 오래라고 보여지는 인간사가 그나마 지금 그자리에 붙들려 있는 것은 애초부터 폭력적이고 왜곡된 우주의 부패를 적절한 선에서 제지하도록 입력되어 있는 자연의 자정능력 때문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더 버텨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두번째 테마 "천상의 피조물"을 보며 자못 불교의 틀을 빌려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이것은 마치 예수의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것같은 혼동을 내 안에 불러 일으켰다. 신적, 우주적 지혜의 결정체가 기대하지 못했던, 아니 바라지 않았던 모습으로의 인카네이션을 한 것이 애초에 문제라면, 인간이라는 해석의 한계에 봉착한 . . . 아니 해석의 순환에 갇혀 있는 존재와 그들이 이미 짜놓고 더이상의 전진 혹은 탈출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내면화의 연속이 출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존재의 환경을 설정하는 주체인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설정된 환경이 지칭하는 바 자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모든 것이 인간의 개체적 이기심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블랙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어찌 보면 시공의 형식 구조 안에 하나의 타자가 위치를 점하고 나타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의 은혜가 아닌가? 그 성육신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타자성의 침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거싱 오늘의 세계인 것이다. 어찌보면 이 세계는 이미 C. S. Lewis가 말한 것과 같이 너무 밀도가 커져서 압축되고 압축되다 보니 이제 더이상은 의미도 무게도 색깔도 잃어버리고 없어질 위기에 처한 발치에 걷어차일 행성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을 Lewis는 지옥이라 하였다(in Great Divo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