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금요일. CGV 구로에서 신지혜 아나운서와 함께 하는 무비꼴라쥬 시네마톡이 있었습니다. 핀란드 영화 <야곱신부의 편지> 였고요. 아래의 이야기들은 영화에 대한 제 리뷰가 아니고, 시네마톡에서의 신지혜 아나운서님과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이 <야곱신부의 편지>는 '편지'라는 굉장히 중요한 매개가 있잖아요.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등장인물이 참 이렇게 없기가 힘들어요. 그렇죠? 세 명, 초기에 간수 비슷한 사람이 나오니까 네 명. 자연이 거의 주 인 것 처럼 나오고, 어쩜 그렇게 그 마을에는 사람들도 안 사는 지.. 그렇죠? 광활한 곳에서 자연과 몇몇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광을 보셨을 텐데 그 이야기를 나눌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아마 거의 비슷하게 느끼셨을 거예요. 단절이라든지 용서, 구원, 치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는 영화였던 것 같은데요.
저는 영화 속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편지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매개로 작용을 하는 걸 봤는데요. 지금 우리 편지 쓰나요? 안 써요. 저도. 손 편지 써본 지가 언제던가 싶어요. 예전에는 곧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말입니다. 편지라는 건 사실 시간이라는 것과 굉장히 결부가 되어 있죠. 요즘은 이 것으로(스마트폰) 보내잖아요. 약자로 , 이모티콘 써서 보내고.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굉장히 즉각적이죠. 저도 사실 방송에서 모바일로도 받고, 인터넷 라디오 레인보우로도 사연이 다 들어와요. 사연 신청곡 홈페이지 란이 따로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거기 보다 실시간으로 모바일과 레인보우로 들어오는 게 훨씬 많아요. 제가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지금 15년간 제작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꽤 됐죠?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사실 제가 영화음악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엽서, 편지, 그리고 팩스 사연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리고 그 때는 4대 통신이라고 불렸던,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천리안. 이런 거. 이런 것들 썼었는데 솔직히 그 때는 4대 통신보다 편지, 그리고 엽서, 실시간으로 들어온 팩스 사연이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무언가 써서, 편지 쓸 때 우리 한참 고민하지 않아요? 그렇게 한 장 두 장 채워진 편지를 봉투에 넣고 풀로 붙이고 우표를 사서 붙이고 우체통에 찾아가서 넣거나 우체국에 가서 발송을 하고 그러면 또 몇 일 시간이 걸리죠? 그러면 받는 사람은 아무 개씨 편지요, 하면 그거 받아서 누구한테 편지가 온 걸까. 누가 보냈을까. 발신인 이름을 보고 아, 누가 보냈구나. 반가워서 바로 뜯어볼 수 있지만. 영화에서 가끔 그런 거 있잖아요. 이 편지를 읽을 때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치장을 하고, 마음을 다 잡고, 손을 씻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죠. 편지를 뜯어서 읽고, 이런 일련의 시간들이 있어요. 그 편지 한 통은 그래서 단순한 전달체, 매개체 라기 보다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시간의 어떤 순서에 따라서 이 사람과 이 사람을 이어주고 맺어주는 어떤 다리 같은, 가교 같은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야곱신부의 편지>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은 참 많이. 어쩌면 잊어버리고 사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영화 속에서 나오는 편지 이야기를 좀 더 해볼께요. 이 편지는 아마도 저와 여러분들이 같은 느낌을 가지셨을 텐데, 이 영화 속에서 편지는 그냥 '신부님, 안녕하세요.' 라는 건 아니죠. 너무 단순한, '우리 집 개가 도망갔어요'. 부터 시작해서 누구를 사랑하는데, 이런 아픈 일을 겪었는데.. 상담 편지 잖아요. 문장이 길고 짧은 걸 떠나서 진심과 마음과 감정과 이런 것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의 일부분이 전달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야곱 신부는 그것을 주의 깊게 듣고, 진심을 다해서 그에 맞는 성경 구절을 찾아내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답장을 쓰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얼마나 그 마음과 마음을 제대로 이어줄 수 있는가, 그 이어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어요. 따라서 그 편지는 일종의 용서, 치유, 마음의 교감, 소통, 이런 것들을 대변하는 가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 속 편지는 또 하나 레일라 라는 여자와 야곱 신부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가교가 되기도 하는데요. 영화 속에서 야곱 신부는 레일라를 부르는 것이, '내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 일을 하던 누군가가 일을 그만 두게 되어서 나를 도와 주세요', 라는 정도로만 우리는 그렇게 알았어요. 그렇죠? 근데 왜 굳이 저 여자를 불렀을까, 하는 의문 정도는 들었지만 어쨌거나 레일라도 부루퉁한 얼굴로 와서 왜 나를 불렀지? 이런 표정으로 있잖아요. 편지 오면 뭐가 이렇게 많아. 우물에 던져 버리고, 오늘은 이게 다야. 이러고. 계속해서 협조적이지 않아요. 왜냐면 그 스스로가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었고, 스스로 마음이 어두워져 있었고, 스스로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죠. 그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런 큰 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레일라라는 이 여자는 이 편지를 읽어주고, 언제 보냈는 지도 모르는 편지에 답장을 써주는 것들이 어쩌면 바보 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야곱 신부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보낸 편지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너무 깊은 감정과 감상을 담고 있는,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종의 소명,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레일라는 정 반대, 대척점에 서 있는 거죠. 그녀에게는 편지 한 통은 너무 불필요한 것이고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런 작업 하나 하나가 굉장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데칼코마니처럼 딱 반으로 접히는 순간이 오죠.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자 저도 깜짝 놀랐어요. 편지가 오지 않자 야곱신부가 급격하게 노쇠해지는 거 보셨어요? 절망했구나, 아.. 저 신부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서도 한편 저 야곱신부가 저러면 안 되는데, 왜 저러면 안 되는데 하고 내가 생각하는 걸까. 잠깐 생각해봤더니.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편지가 끊어졌을 때 자기 자신이 절망하는 거예요. 그건 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냥 저 사람도 인간이었구나 하는 어떤 안타까움, 아픔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영화 뒷부분에서 나름 치유가 되는 것을 보고 나름 안도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니까 우리 다같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 곳이 좀 찡해지죠.
평생을 나의 소명은 이거야, 나의 사명은 이거야.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열심히 해오고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왔지만, 결국은 이제는 자신은 눈이 보이지 않고 노쇠하고,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또 가슴 아픈 장면은 그거잖아요. 일어나서 오늘은 은식기를 다 꺼내달라고, 오늘 결혼식이 있을 거라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곳에서. 절망하고, 기도도 못하잖아요. 너무 마음이 아프고, 너무 마음이 흔들리니까. 그런 장면 속에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레일라에게도 변화가 찾아오죠. 아, 저 야곱신부에게는 편지를 줘야 겠구나. 그 편지를 쓰죠. 자기의 마음으로. 그러면서 우리는 레일라가 담고 있는 마음의 상처, 마음의 짐, 그리고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그녀가 감옥에 오래 가 있어야 했는지, 왜 종신형을 받았는지에 대한 비밀 아닌 비밀을 접하게 되면서 거기서 부터 이 영화는 용서와 화해라는 것을, 위로와 치유라는 것을 건네주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요. 바로 이 지점이 데칼 코마니처럼 이렇게 찍혀서 넘어가는 장면일 텐데요. 어찌보면 레일라가 자기 마음의 편지를 야곱신부에게 털어놓을 때, 두 사람은 데칼 코마니의 양 면에 똑같은 그림처럼 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보여주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뭐냐면 처음에 봤을 때, 야곱신부와 레일라는 극과 극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야곱 신부는 얼굴부터가 너무 선량하죠. 저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면서 저렇게 아름답게 생을 살아왔을 거야, 라는 게 보이고 레일라는 우리가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때, 단순히 종신형을 받았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우편 배달부도 그러잖아요. 무서워서 도망가면서 살인범일 텐데.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대치점에 서 있었던 두 사람이 결국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요.
어떤 의미에서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버림 받았다는 거죠.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의미에서 버림받음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의미에서 버림받음이라고 해야 더 맞을 거예요. 신부는 편지가 오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여기고, 소명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삶의 낙이었던 거죠. 난 아직 버림 받지 않았구나, 난 아직까지 사람들한테 쓸모가 있는 거구나, 나는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할 의미가 있는 거구나. 편지에 투영된 것일 지도 몰라요. 하지만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았을 때, 자신은 나는 쓸모 없고 버림받은 사람이구나 생각했겠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레일라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언니,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날 지켜주고 나를 대신해서 매를 맞아주고 폭행을 견뎌준 언니였는데, 언니를 위해서 했던 일이 오히려 언니에게 불행을 갖다준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버림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과 언니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단절시켜 버려요. 이것들이 결국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도 짜르르한 전율로 다가오면서 편지라는 것이 갖는 힘을 알 수 있어요.
하나 또 영화를 보면서 재밌었던 것 중의 하나인데요. 이런 면에서 영화를 보셔도 재미있을 거예요, 라는 건데. 영화의 주 무대는 사제관인데, 그 공간. 그리고 그 앞에 딸린 작은 정원이라고 할까요. 거기가 거의 다예요. 재밌는 건 편지를 받아서 보관하고, 차를 마신다 하는 것은 사제관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런 복도라든지 문이라는게 사제를 가둬놓는 듯한, 닫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줘요. 그런데 편지를 읽을 때는 정원에 나와서 밖에서 읽거든요. 복도, 문 프레임에 닫혀져 있는 것이 우리의 몸, 외피, 표면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나와서 편지를 읽을 때는 탁 터진 공간이죠. 자유로운 공간, 우리의 내면, 마음, 소통 이런 것들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굳이 밖으로 나와서 편지를 읽어달라고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굳이 그렇진 않아도 되었을 것 같아요. 감독의 의도이든 아니든 보는 관객으로서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비교해 보면서 영화를 보실 때 재미가 있을 거예요. 사제관 내부에서, 결혼식이 있을 거라고 했던 마을의 작은 성당도 닫힌 공간이잖아요. 거기서는 괴롭고 갈등이 있어요. 그것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마음을 탁 터놓고 마음의 편지를 쓰기도 하고, 우편 배달부에게 빨리 편지를 내놓으라고 하기도 하고. 그건 다 야곱신부를 위한 일이었어요. 그러면서 마음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공간의 개념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마음은 굉장히 나약해요.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우리의 삶은 굉장히 허술해요.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위로와 치유와 격려와 응원. 서로 베푸는 거.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런 가치있고 아름다운 덕목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 그런 덕목들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솔직히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야, 사람도 안 나오고, 무슨 에피소드도 없고, 레일라는 참 뚱하고.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아..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차, 싶기도 했고요. 방금 말했었던 이런 덕목들의 이야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이런 영화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러닝타임 길지 않고. 이런 거 괜히 늘여서 찍을 필요 없잖아요.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고, 우리에게 온기를 주는 영화들, 우리가 이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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