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신부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다르게 영화 리뷰를 해볼까 합니다. 사실은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리뷰를 쓰는게 익숙치 않아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뭉클한 영화를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잘 전달을 할 수 있을지, 혹은 굳이 전달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야 좋은 영화를 제 안에 남겨둘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아주 오래간만에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제 마음과 감정을 모두 담아서요. (아참, 그 날 나누었던 시네마톡에서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요. 그 이야기는 따로 올리려구요.)

2012/05/11 - [상실의시대/영화를봤어] - [야곱신부의 편지] 5월 10일 시네마톡 (with 신지혜 아나운서)


겉모습부터 상당히 위협적인 한 여성이 나오더군요. 이름이 레일라 스텐이라고 했던가요. 무기징역수라는 말이 붙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했다구요. 그녀가 신부님의 조수로 일하게 되어서 처음 사제관에 갔을 때가 기억나요.  그때 알았지요. 아, 신부님이 앞이 보이지 않는 분이구나. 그러면서도 신부님은 꽤 능숙하게 당신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온 레일라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었지요. 모든 것이 불만투성이인 레일라는 신부님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요. 신부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던 레일라의 표정이 생각 나네요. 정말 앞이 보이나 안 보이나 빵칼을 들고 신부님 눈 앞에 대 보이던 것도요.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레일라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고요. 신부님 앞으로 배달되는 편지를 읽어주고, 불러주는 대로 답장을 써주면 된다는 것 말이예요.


10년이 넘게 감옥에 있었던 그녀가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하게 된 일 치고는 이 정도는 정말 쉬운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시종일관 귀찮음 투성이었죠. 신부님이 이런 일을 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어요. 신부님에게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다양했고, 이런 것들까지 편지를 쓰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있더군요. 진지한 고민들까지도요. 레일라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그들의 사연에 신부님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더군요. 레일라는 어쩌면 그런 신부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서명에 함께 이름을 적으려 하자 불같이 화도 내더군요.  

문제는 우편배달부였어요. 아마도 처음에 레일라를 조수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신부님도 겁을 내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레일라를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딱 그렇거든요. 우편 배달부가 보였던 반응이요. 무기징역수, 살인범,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보고 경멸의 눈빛을 던지죠. 신부님은 우편배달부가 타고 오는 자전거 페달 소리만 들어도 이게 새로운 자전거인지 어떤지 아는 정도였잖아요. 그렇게 가까웠던 사이이니까 혹시나 그녀가 신부님을 해하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워 하던 우편배달부의 마음도 이해는 가요. 여전히 성가신 일을 하고 있던 나날이지만, 그 날도 레일라가 편지를 기다리느라 대문 앞에 서 있었을 때 우편배달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샛길로 빠지죠. 처음엔 우편 배달부가 그녀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더이상 신부님께 편지가 오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그것 말고 달라진 게 있다면, 레일라가 어느새인가 신부님의 옆자리에서 차를 한 잔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요. 아마도 신부님을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은 열렸던 모양인가 봐요. 


신부님, 그거 아세요? 신부님께 더이상 편지가 배달되지 않는 이후로 신부님이 급격하게 노쇠해지셨어요. 레일라가 무뚝뚝하게 편지가 없다고 말할 때, 신부님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무척 마음이 아팠거든요. 신부님이 그러셨잖아요. 이 일을 하는 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이 결국엔 신부님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었던 것이었나 봐요. 더이상 누구도 신부님께 삶의 짐을 내려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부님 자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성당에서의 신부님의 모습은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늙어버린, 이제는 쓸모없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 하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는 신부님의 결심이 끝내 보였을 때 더욱 아팠거든요. 


그 시간, 홀로 성당에 신부님을 남겨놓고 사제관으로 온 레일라는 그 곳을 떠나려고 해요. 성당에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괴로워 하던 신부님의 모습이 레일라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았거든요. 앞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신부님은 의미있는 삶을 살고 계시구나 라고 생각했었던 걸까요. 어쩌면 신부님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 몰라요. 그런데 신부님의 약해진 모습은 레일라에게 혼란스럽기만 했죠. 결국 신부님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 아닐까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떠나지 못하죠. 어떤 마음이 그녀를 붙잡았던 걸까요.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도 그녀가 갈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겠지요. 레일라 역시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눈 앞에 당당해 질 자신이 없었을 거고요. 결국 그녀가 택하려던 방법 역시 신부님과 같았어요. 하지만 그 역시 쉽지는 않았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하나 남아서 였던 걸까요. 신부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신의 계시였을까요.  


사실 신부님은 모르셨겠지만, 그녀는 신부님께 오는 편지들을 읽어주고 답장을 쓰는 일이 귀찮아서 우물에 몇 개 버려버리기도 했어요. 결국 레일라는 약해진 신부님이 안타깝게 보였는지 신부님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편지라고 생각했었나 봐요. 그래서 우편배달부를 직접 찾아가죠. 우편배달부는 더이상 신부님께 편지가 오지 않는 거라고 말해요. 정말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레일라는 편지가 왔다고 하고 신부님을 모시고 정원 의자에 앉아요. 늘 정갈하게 로만칼라를 갖춰입으셨던 신부님이 후줄근한 내복을 입고 맨발로 자리에 앉으시죠. 그 모습은 뭐랄까. 신부님이라기 보다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달까. 실낱같은 희망, 그러니까 편지요.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편지가 왔다는 소식에 맨발로 나오셨잖아요. 


레일라는 편지가 온 것 처럼 했지요. 봉투 대신 잡지의 한 페이지를 뜯고요. 예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사람들이 보내 온 사소한 고민들인 것 마냥, 우리 집 개가 없어졌다고 지어 내요. 이름은 있지만, 주소는 없는 편지요. 신부님은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허무하기까지 한 편지가 끝나고 그저 씩 웃고 자리를 뜨던 신부님을 다시 붙잡았죠. 레일라가 또 하나 편지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요. 그녀의 마음 속에 가득 담겨있던 상처가 12년 여만에 밖으로 나오던 순간이었어요. 그녀는 그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신부님은 레일라의 이야기를 쭉 듣고만 계셨죠.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그녀에게 신부님은 기도 대신 몇 통의 편지를 건네 주셨어요. 레일라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흐르는 눈물을 더 멈추지 못했죠. 신부님이 그 편지를 다 읽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안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겠다고. 아, 레일라가 마실 커피까지도 챙기시더라구요. 


레일라가 그 편지들을 가슴에 묻고 신부님을 만나러 사제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제관을 휘감던 그 정적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레일라가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은 그 때. 비로소 신부님도 해방이 되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쩌면 신부님도, 레일는 서로에게 가장 솔직했던 사람들이잖아요.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자신의 상처까지 내보였던 사람 말이에요. 신부님과 레일라는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닮아있었어요. 상대방의 모습 속에서 나의 약함을 발견할 때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도요. 둘 다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었잖아요. 


이제는 텅 빈 사제관을 걸어나오면서 레일라는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겠지요? 편지봉투에 씌여진 그 주소를 찾아 가겠지요.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야 말로 진심으로 세상을 껴안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녹록치 않은 일이겠지만,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고,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았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레일라 역시 꿋꿋하게 살아갈 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요. 


신부님. 참 마음이 뭉클해지는 영화를 만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긴 편지를 남겼어요. 사람들도 야곱신부님을 만나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크고요. 신부님께서 늘 그랬듯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해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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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rouch.ginu.kr BlogIcon 궁시렁 2012/05/11 15:15

    이 영화 꼭 챙겨봐야겠어요 ^^

    • Favicon of http://hwanyou.net BlogIcon 환유 2012/05/14 14:49

      이 영화..잔잔하면서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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